[컬럼] 태권도 교사를 ‘사범’이라고 부르는 이유 (전난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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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용희
기사입력 2019-11-18 [18:56]

 칼럼 (전난희 박사)

태권도 교사를 사범이라고 부르는 이유

 

 



2018
년 여름 무주 태권도원을 찾은 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교정청장과 만남은 너무 특별했다. 태권도 공인 6단이라고 밝힌 필자에게 정 자세를 취하며 깍듯하게 한국식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코끼리 뿔인 상아를 무역했던 곳으로 알려진 옛 이름 아이보리코스트였던 현재의 코트디부아르에서 그는 태권도 사범을 만나 태권도를 배웠다고 했다. 그는 당시 자기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주었던 사범님을 꼭 만나고 싶어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국기원에 계신 연로하신 사범님과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국가 원수를 대하듯 바른 자세를 취하고, 이산 가족을 만난 듯 얼굴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그리고 계속 이 분이 나의 사범님(Master)이라며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자긍심은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도 전해졌을뿐 아니라, 각인되기까지 했다.

 

우리는 태권도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교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범이라고 별다른 호칭을 사용한다. 교사란 가르치는 선생님을 의미하지만, 사범은 여기에 특별한 의미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교사의 와 모범의 을 합쳤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태권도는 단순한 지식과 정보를 가르치는 스포츠가 아니다. 축구, 야구, 농구 등의 스포츠에서는 교사를 코치라고 부른다. 코치(Coach)지도하여 가르치는 사람을 뜻한다. 결국 잘 배울 수 있도록 운동 경기의 기술뿐 아니라 정신도 지도해주는 역할을 코치가 하고 있다. 그러나 태권도의 사범은 코치보다 더 특별한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모범, 모델, 본보기가 되는 역할과 수련의 방향성까지 제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어린 아이들에게 꿈이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아이들이 꿈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냐고 물어보면, 없다는 말이 바로 튀어나오기가 일쑤다. 그래서인지 요즘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의 직업 1순위가 공무원인지도 모르겠다. 꿈도 없고 존경하는 인물도 없이 사는 모습은 그냥 바라만 보기가 때로는 고통스럽다.

우리나라의 스포츠인 국기 태권도에는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범이 있다. 그래서 수련생들은 태권도 사범을 통해 발과 손기술 뿐 아니라 삶아가는 방향과 길까지 배웠다. 사범님은 태권도 수련생에게 태권도 수련의 모범과 모델이었고 태권도 정신의 본보기였다.

 

태권도가 정식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기 전, 태권도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한 요인도 바로 태권도 사범들의 헌신적인 노력때문이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태권도 세계화에 있어 태권도가 해외에서 선풍적인 관심을 끌게 된 것은 해외로 파견된 한국 태권도 사범들의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이었다고 한다. 또한, 아프리카에 태권도가 보급되어 대중화를 이룬 것도 한국 태권도 사범들의 피나는 노력과 개인적인 헌신이었다는 논문이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작은 동양의 나라의 태권도를 접하며 태권도를 통해 인격을 완성하고 올림픽 선수로서 국위선양까지 꿈꿀 수 있었던 외국 선수들이 가장 먼저 본 것은 태권도 사범님 안에 있는 정신세계였다. 그것이 그들에게 수련의 길과 인생의 방향이 되었고, 태권도가 전세계인의 스포츠 대축제인 올림픽의 정식 종목이 될 수 있는 열쇠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의 태권도에는 괄목할만한 기술과 제도의 발전이 있었다. 부족하지만 태권도의 세계화도 다양한 연구와 정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태권도에서 사범의 존재는 자꾸만 퇴색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의심이 된다. ‘사범이 빠진 태권도는 다른 스포츠와의 변별력을 쉽게 잃고 말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태권도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사범님이라고 부른다. 태권도를 통해 태권 수련의 길과 바른 인생의 모범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도 태권도 사범님이 계셨고, 또 태권도를 가르치며 그 사범님이 되고자 오늘도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지금도 작은 키의 연로한 동양의 작은 나라 노인을 흥분하며 나의 사범님이라고 부르며 흥분하던 코트디부아르 교정청장의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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